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문단 편집) === 후반: 프로이센 vs. 국민방위정부 === 항복 후에도 비스마르크는 나폴레옹 3세에게 대우를 극진히 했는데 나폴레옹 3세의 정부가 무너지면 항복을 받을 대상이 없어지고 전쟁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의 바람과는 달리 파리에선 제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들어선다. 주력군이 모두 붕괴되고 황제가 포로로 잡혔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열받은 [[파리(프랑스)|파리]] 시민들은 루이 쥘 트로쉬를 대통령으로 하는 국민방위정부를 만들어서 항쟁을 지속하기로 결정하였다. 패퇴한 프랑스 육군 병력들이 파리를 중심으로 일부나마 모이기 시작하였으며, 국민방위정부는 이들과 [[국민위병]] 및 [[민병대|의용군]], 해군 육전대 등을 긁어모아 국민방위군을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난 줄 알고 좋아라 했던 프로이센은 당황하면서도 프랑스 영내로 깊숙히 진격해 [[9월 15일]] 파리 외곽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국민방위정부에게 [[알자스-로렌]]을 할양하는 조건으로 항복할 것을 요구했고 국민방위정부에선 그 대신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를 할양하는 안을 고려하였으나 대통령인 루이 쥘 트로쉬가 영토를 1인치라도 할양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전쟁의 연장이 결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